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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인터뷰] 김병현 "이미 은퇴 타이밍 놓쳤다."

최종수정 2016.11.21 오전 06:30 기사원문

KIA 퇴단이 예정된 김병현. 김병현은 체질 개선을 통한 체중 감량으로 건강 상태가 좋아졌다. 최상의 몸으로 자기 공을 던져보고 은퇴하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KIA 퇴단 예정 김병현 "야구를 못해 나오는 것"

식이요법으로 14kg 감량 성공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시즌 중 은퇴 고민 "임창용 보고 재기 결심"

절박한 김병현 "조건 관계없이 마지막으로 내 공을 던져보고 싶다."

김병현(38). 한국인 메이저리거 1세대다. 박찬호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한민국 야구의 전설이다. 한국인으로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을 맛본 이도 그가 1호고, 아시아인으로 메이저리그 양대리그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것도 그가 처음이다.

작은 체구의 그가 메이저리그 강타자들을 상대로 삼진쇼를 펼치던 장면을 올드 야구팬들은 어제일처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전설 김병현’은 과거 살던 집 주소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요즘 젊은 야구팬들에게 2000년대 초중반 불꽃 투구를 펼치던 김병현은 그저 ‘과거의 사람’일 뿐이다. 젊은 야구팬들은 김병현보단 되레 류현진(다저스), 강정호(피츠버그), 오승환(세인트루이스), 박병호(미네소타), 김현수(볼티모어) 등이 더 친근하다.

세상에 영원한 건 ‘세상에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진리뿐이라고 하지 않는가. 세월의 무상함에서 김병현이라고 예외일 순 없는 법. 최근 세월의 무상함을 더 느끼게 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바로 김병현의 KIA 타이거즈 퇴단 소식이었다.

11월 중순 KIA는 ‘내년 시즌에도 현역 선수로 뛰고 싶다’는 김병현의 의사를 전달받은 뒤 그를 보류 선수명단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보류 선수명단에서 제외되면 김병현은 자유계약선수 신분이 돼 자신을 원하는 팀이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문제는 과연 내년이면 39살이 되는 김병현을 어느 팀에서 받겠느냐는 것이다. 가뜩이나 올 시즌 1군 등판 기록이 전무한 김병현이다. 무엇보다 ‘김병현’이라는 이름값이 주는 무게감은 자칫 큰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김병현은 누구보다 이런 현실을 잘 안다. 알면서도 그가 강한 현역 지속 의지를 내비치는 이유는 돈도, 명예도, 기록 때문도 아니다. 김병현은 '엠스플뉴스'와의 와이드 인터뷰에서 “한 번이라도 내 공을 던져보고 싶어 현역으로 계속 뛰고 싶을 뿐”이라고 답했다. 

김병현은 “최근 10년 동안 지금이 가장 건강한 몸 상태”라고 강조한 뒤 “미련없이 그만둘 수 있는 공을 던질 준비가 돼 있다. 그런 공을 던진다면 30년 야구인생을 깔끔하게 끝낼 수 있을 거 같다”며 “어느 팀이든 날 받아준다면 조건 따윈 보지 않고, 팀과 나를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고 다짐했다.

‘은퇴’와 ‘현역 지속’ 갈림길에 서 있는 김병현과의 와이드 인터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어떻게 지내나.

잘 지내고 있다. 비시즌 기간이라, 얘들과 놀아주고, 그림도 좀 배우고 있다(웃음).

그림?

아직 낙서하는 정도다(웃음).

11월 중순 KIA가 ‘소속 선수 김병현을 보류 선수명단에서 제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병현 선수의 현역 연장 의사가 강해 조건 없이 보류 선수명단에서 제외하기로 했다’는 추가설명을 내놨다.

심플하게 말해 야구를 못해 (KIA에서) 나오는 거다. 넥센, KIA에 늘 감사한 마음이다. 미국에서의 활약상을 좋게 평가해주셨고, 계속 기다려주셨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KIA가 보류 선수명단에서 제외하면, 그 즉시 무적(無籍)선수가 된다. 계속 현역으로 뛰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한가.

그렇다. 선수로 더 뛰고 싶다. 그간 나 자신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은 상태다.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마지막으로 ‘내가 고민했던 게 맞는 건가’ 테스트를 해보고 그만두고 싶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란 이야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들려준다면. 

메이저리그에서 두 시즌 정도 치르면서 몸이 바뀐 걸 느꼈다. 투구폼도 바꿔보고, 여러 가질 해봤지만, 부상을 당하면서 시간만 점점 흘러갔다. 그땐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혼자서 묻고, 혼자서 답을 찾는 과정이 반복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프로 생활을 한 다음 미국 무대를 밟았으면 더 좋았을걸’하는 생각을 한다. 그럼 사회생활도 많이 배웠을 거다. 어린 나이에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 던질려고 하니까 무척 혼란스러웠다. 메이저리그 두 시즌 때까진 한국에서 배운 거로 버텼는데, 세 시즌 때부턴 그게 잘 안됐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란 해답을 어느 정도 찾은 상태라고 했는데.

2007년부터 올해까지 10년 정도 나 자신을 많이 관찰했다. ‘가장 좋았던 공을 어떻게 하면 다시 던질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체중 감량이다. 

체중 감량?

한창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 체중이 95kg에서 98kg 사이였다. 지금은 5개월가량 식이 조절한 덕분에 81kg 정도 된다. '예전으로 돌아가보자'는 생각에 살을 뺀 거다. 확실히 살을 빼니 몸이 좋아지고, 몸이 좋아지니 정신도 맑아지더라.

실제로 몸이 무척 좋아 보인다. 

여기서 안 되면 기분 좋게 야구를 그만둘 수 있는 몸이 됐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몸이 변하니 마음도 따라 변했다. 정신적으로 약해졌다면 그건 몸이 건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몸이 건강하면 정신도 건강해진다. 

2주 휴가 이후 다시 야구공을 잡은 김병현

"임창용 선배 몸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KIA 시절 김병현은 충수염과 골반 부상으로 고향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그게 가장 미안할 뿐이라는 게 김병현의 속내다(사진=KIA)

지난해 시즌 종료와 함께 준비를 참 많이 했다. 하지만, 결과는 올 시즌 1군 등판 ‘전무(全無)“였다.

시즌 전 여러 가지를 준비하면서 나 자신에게 기대가 컸다. ‘힘만 조금 붙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웨이트 트레이닝 대신 러닝을 많이 소화했다. 메이저리그 시절 정말 많이 뛰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독이 됐다.

독?

정상적인 신체 밸런스였다면 러닝을 잘 소화했을 거다. 그러나 올 초부터 골반이 좋지 않았다. 한마디로 타이어 한쪽이 마모된 상태에서 계속 달린 거다. 충격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과도한 러닝이 골반 부상으로 이어지면서 캠프에서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했다. 

골반 부상으로 퓨처스리그(2군 리그) 등판도 5월이 돼서야 이뤄진 것으로 안다.

그때도 몸이 너무 좋지 않았다. ‘운동을 그만둘까’ 생각했던 시기다. 

그즈음 KIA 구단이 2주 정도 휴가를 준 것으로 안다. 

맞다. 2주 정도 쉬었다. 그때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하는 생각과 ‘예전 투구할 때의 기분을 느낀 다음 미련 없이 그만두자’는 다짐을 참 많이 했다.

2주 휴가 이후 은퇴 대신 다시 야구공을 잡았다. 이유가 있었나.

임창용 선배 때문이다. 임 선배를 보고서 생각이 바뀌었다.

임창용?

우연히 임 선배 몸을 봤는데 예전 그대로였다. 반면 내 몸을 거울로 보니…예전 몸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체중을 빼고 싶었던 차에 임 선배 몸이 큰 자극이 됐다. 그때부터 체질 개선을 통해 새롭게 몸을 만들어보자고 다짐했다. 

7월까진 퓨처스리그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러다 8월부터 점점 투구 내용이 좋아졌다. 

퓨처스리그 시즌 중반까지 기록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준비과정이었다. 시즌 후반ㄱ;엔 준비가 잘됐다. 마음 같아선 1군에서 던지고 싶었다. 1군의 강한 타자들과 위기에서 만나 계속 상대해야 내 안의 좋은 것들을 끄집어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시즌 후반기 확장 엔트리가 발표됐을 때도 ‘김병현’의 이름은 없었다.

팀이 기대한 만큼의 공을 던지지 못한 게 사실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팀이 원하는 방향이 달랐을 수도 있고. 내가 야구를 계속할 수 있게 지켜봐 주신 것만으로도 KIA 구단엔 감사할 따름이다.

큰 기대를 모으며 넥센 유니폼을 입었던 김병현(사진=넥센)

KIA가 보류 선수명단에서 제외하면 다른 팀을 알아봐야 한다. 

한창 좋았을 때처럼 던질 수 있으리라곤 나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게 던지길 바란다면 욕심이다. 내년이면 세월이 지나 나도 이제 마흔 가까운 나이가 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난 몇 년 동안과 비교해 지금 몸이 가장 좋다는 거다. 미련 없이 그만둘 수 있는 공을 던져보고 싶다. 

미련 없는 투구의 기준이 뭘까 궁금하다.

난 KBO리그 100승 투수가 아니다. 어릴 적부터 야구를 시작해 지금까지 온 건 야구가 재밌고, 야구를 잘해서였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겠다, 메이저리그에서 뛰겠다는 식의 확고한 꿈 같은 건 솔직히 없었다. 상황 상황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 미련없는 투구는 다른 게 아니다. 예전 기분 좋게 던졌던 공을 한 번이라도 더 던지고 싶은 것뿐이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절박한 감정이 느껴진다. 정말 절박한가.

(단호한 어조로) 절박하다. 열 살 전후로 야구를 시작했으니 30년 동안 야구선수로만 살았다. 시간이 흘러 코치, 유소년 야구지도자, 해설위원 등 여러 가지 일을 할지 모른다. 그러나 난 아직 야구선수다. 30년 동안의 야구선수 인생을 기분 좋게, 깔끔하게 끝내고 싶다.

‘무적 선수’ 김병현을 바라보는 팀들의 고민은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바로 몸 상태와 대우다. 몸 상태는 좋은 듯하지만, ‘김병현’이라는 거물을 데려오려면 적지 않은 투자를 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뭘 보여준 게 있어야 뭘 바라지 않겠나. 그런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어느 팀이든 날 받아주기만 하신다면 조건 관계없이 그 팀에서 열심히 뛰고 싶은 마음뿐이다.

현재 팀은 알아보고 있나.

조심스럽게 알아보려고 한다. 내 안의 좋은 걸 끄집어낼 수 있는 리그에서 뛰고 싶다. 퓨처스리그는 리그 수준도 높고, 좋은 선수도 많다. 하지만, 퓨처스리그에만 계속 있으면 실력이 정체될 수밖에 없다. 날 받아주는 곳이 있다면, 내 안의 숨겨진 좋은 걸 끄집어 내줄 수 있는 팀이 있다면 일본, 미국 등 국외리그에서도 뛸 마음이 있다.

현역 연장이 가능하다면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리그에서도 뛸 수 있다는 말인데.

결국 야구는 어디서 하든 똑같다. ‘어느 무대에서 뛰느냐’보단 ‘얼마나 기분 좋게 내 공을 던질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지금 야구를 그만둔다면 나 자신을 계속 관찰했던 노력이 아무 의미 없이 사라져 버리게 된다. KBO리그가 안 된다면 국외리그에 가서라도 내가 관찰했던 것들이 맞는지 확인해볼 참이다.

국내외 어느 리그에서 뛰든 ‘스프링캠프’라는 1차 경쟁과 ‘시범경기’라는 2차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1군 출전이 가능하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이번에 가는 팀이 내 야구인생 마지막 팀이 될 거다. 만약 스프링캠프에서 열심히 뛰었는데도 ‘안 된다’ 싶으면 기분 좋게 그만둘 수 있을 거 같다. 

"은퇴? 미국에서 그만뒀어야 했다. 

난 은퇴 타이밍을 이미 놓쳤다."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의 김병현(사진=MLB)

야구계 인사들이 은퇴 갈림길에 선 베테랑들에게 하는 늘 말이 있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것이다. 그때마다 베테랑 선수들은 ‘유종의 미를 거둔 뒤 떠나겠다’고 답한다. 누군가는 김병현이 박수칠 때 떠나길 바랄 수도 있다. 

예전부터 선동열 감독님처럼 멋있게 은퇴하고 싶었다. (박)찬호 형이 제1회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때 “은퇴할 시점엔 꼭 한국 가서 뛰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국 정말 본인 말처럼 됐다. 그런 찬호 형 보면서 ‘계획 있게 잘 사는 분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난 그때 찬호 형한테 “저는 한국에 안 갈 겁니다”라고 했다.

왜?

내 공을 고국 야구팬들께 보여드리는 게 부끄럽고, 창피했으니까.

메이저리그에서 그렇게 잘 던졌는데 부끄럽고, 창피하다니?

대표팀에서 부를 때 가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그저 내 공이 부끄러웠다. 날 응원해준 분들께 좋은 공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그때 공으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2012년 KBO리그 무대에 서지 않았나.

결혼하고서 생각이 변했다. 용기가 생겼다고나 할까. 만약 내가 은퇴를 해야 했다면.

했다면?

미국에서 그만뒀어야 했다. 난 은퇴 타이밍을 이미 놓쳤다. 

미국에서라면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었던 2007년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2007년 이후로 2010년 미국 독립리그에서 뛸 때까지 3년을 쉬었다. 그땐 정상적인 몸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 기간을 혼자 버텼다는 거다. ‘동료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훈련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때도 은퇴하지 않았던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3년 동안 편한 기분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꿈을 꾸면 항상 어렸을 적 기분 좋게 야구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잠에서 깨면 다시 현실이고. ‘다시 야구하자’는 생각을 한 게 그즈음이었다. 그래서 2010년 독립리그 팀에서 뛰고, 2011년 일본 프로팀(라쿠텐 골든이글스)에도 가고, 2012년 한국(넥센)까지 오게 된 거다.  

월드시리즈 우승 세레머니를 펼치는 김병현(사진=gettyimages/ 이매진스)

미취학생 딸과 아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아빠가 얼마나 훌륭한 투수였는지 모를 거 같다.

TV에서 야구 중계를 하면 마운드에 있는 투수가 내가 아닌데도 애들이 “아빠다!” 한다(웃음). 넥센 시절 아이들이 나 몰래 엄마랑 와서 아빠 경기를 본 모양이다. 내가 그걸 알고 다음부터 야구장에 못 오게 했다.

아니 왜?

부끄러우니까. 딸이 유치원에 가면 “우리 아빠, 야구선수”라고 항상 이야기한단다. 그럴 때마다 딸한테 “쓸데없이 그런 이야기하지 마라”고 한다. 딸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귀엽기는 한데 나 자신에게 늘 불만족한 상황이라, 그런 이야기를 하면 왠지 창피해진다.

창피?

예전에 사람들이 날 보고 “김병현 선수시죠?”하고 물으면 항상 “아닌데요”라고 했다. 그때도 그분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창피해서 ‘아닌데요’라고 했던 거다. 내 공에 만족을 못 하니까 떳떳하게 ‘야구선수 김병현’이라는 말을 못하겠더라. 더 좋은 활약을 펼친 다음 당당하게 ‘저 김병현 선수 맞습니다’하고 싶었다. 그때만 해도 시간이 흐르면 나도 마이클 조던처럼 멋진 선수가 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짧게 숨을 토해내며) 하지만, 날 기다리고 있던 건 마이클 조던이 아니라 내리막길이었다. 

음.

지금 내가 이런 인터뷰하고 있는 걸 보면 나도 많이 긍정적으로 변한 거 같다(웃음). 다시 1군 무대에 도전하려는 건 내 자식들에게 ‘아빠가 어떤 야구선수인지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다. 나를 위한 거다. 전적으로 내 오기다.  

"내가 납득하지 못하면 누가 등 떠밀지 않아도

스스로 유니폼 벗을 계획이다."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 골든이글스 시절의 김병현(사진=엠스플뉴스 박동희 기자)

현역 연장 의사를 밝혔지만, 그게 현실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만약 구애를 보내는 팀이 없으면 결국 은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는데. 

은퇴라, 글쎄. 생각보다 슬프진 않을 거 같다. 여담인데, 내가 어느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해도 ‘은퇴식 좀 해주세요’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 같다. 

왜?

창피하니까(웃음). 

창피하다면 지금이 가장 창피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현역 연장을 하려는 건 '한 번이라도 창피하지 않은 공을 던지고 싶어서' 아닌가.

맞다. 어느 분은 ‘이 정도면 잘했어, 그동안 고생했어’ 하실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우리 야구계는 세대교체가 빠른 거 같다. 어느 정도 베테랑이 되면 힘들어진다. (이)병규 형, (홍)성흔이 형만 봐도 그렇고. 누구나 새 물건을 좋아한다. 선수들도 잘 안다.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선수 입장에선 늘 아쉬운 법이다. 어린 선수가 베테랑보다 실력이 월등하면 어느 베테랑이든 자청해서 옷을 벗을 거다. 그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더 한번 현역생활에 도전하려는 거다. 

맞는 말이다.

(길게 숨을 내쉬며) 이번 겨울이 내 30년 야구인생의 마지막 테스트 기간이 될 거다. 잘하면 내년, 내후년에도 현역생활을 계속할 수 있겠지만, 나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면 누가 등 떠밀지 않아도 스스로 은퇴를 결심할 거다.

현역 이후의 인생과 관련해 많은 생각을 했을지 싶다. 구체적으로 그린 그림이 있나.

구체적으로 뭘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어린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는 스카우트도 재밌을 거 같다. 지도자 역시 나름 보람이 있을 거 같고.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점점 좋아지는 선수 기량을 보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내년 시즌 마음에 드는 공을 던지면, 그 즉시 마운드에서 내려가 은퇴를 선언하는 거 아닌가.

안 된다. 경기 끝나고 내려가야 한다(웃음).

김병은 현재 최상의 몸 상태다. 2007년 이후 가장 좋은 몸 상태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상의 몸으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투구를 한번은 꼭 해보고 싶다는 건 김병현. 그는 어느 팀이든 불러주면 마운드 위에서나 더그아웃에서 팀이 원하는 베테랑 투수가 되겠다는 자세다.

김병현 같은 베테랑은 마운드에서의 성적도 성적이지만, 젊은 선수들에게 좋은 영향과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유용한 카드다. 넥센, KIA 시절 동료 선수들이 말하는 김병현을 종합하면 “후배들 터지하는 법 없이 원하는 선수에 한해 좋은 조언을 잘 들려주는 선수”였다.

젊은 선수들한테 말 많이 하면 안 되니까 조금씩 이야기를 해준 적은 있다. 아무래도 내가 코치가 아니니 뭔가를 말하는 게 조심스럽기도 하고. 어느 팀에 가던 후배들에게 뭔가를 조언해주는 역할은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 같다. 그게 선배로서의 임무이기도 하고.

내년 시즌 마운드에 서서 다시 힘찬 투구를 할지 모른다. 그때의 김병현에게 지금의 김병현이 영상 메시지를 보낸다면.

타인에겐 관대했지만, 나에겐 항상 냉정했다. 지금은 나 자신에게 ‘지금 계속 야구하려는 모습이 자랑스럽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야구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 실망하지 말고 잘 도전했으면 좋겠다. 김병현, 화이팅!

박동희, 김근한 기자 dhp1225@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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